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6.25 전쟁/인식 (문단 편집) == [[유럽]] 지성계의 반응 == 6.25 전쟁은 (비록 명분상이지만) 공산집단이 아무런 명분도 없는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는 점에서 불과 몇 년 전까지 나치의 침략과 광기를 겪었던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다. 때문에 6.25 전쟁을 놓고 좌우간에, 혹은 좌파 내부간에 적잖은 논란이 일어나게 되는데, 물론 좌파 일각에서도 북한의 침략 행위를 비판하는 시각도 존재했지만, 대체로 한국과 미국의 도발에 대한 북한의 자위적 전쟁이라며 옹호하는 분위기가 우세했다. 말하자면 북한은 가만히 있는데, 한국과 미국이 자꾸 집적거리니 북한이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그리고 당시 좌파에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많은 지식인들이 이러한 주장에 낚였는데, 그 중에는 시대의 지성으로 불리는 [[장폴 사르트르]]도 있었다.[* 심지어 사르트르는 최초에는 남침유도설이 아닌 북침설을 대놓고 주장했다. 후에 남침유도설로 입장을 바꾼 것이고 죽을 때까지 이 입장을 철회한 적이 없다.] 당시에는 공산권의 심각한 정보부족으로 인해 현실 사건과 다른 인식을 가진 좌파지식인들이 많았다. 유럽의 [[68혁명]] 당시 많은 신좌파 학생들은 [[마오주의]]를 외쳤으며 [[문화대혁명]] 당시에도 오독되어져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진 적도 있다. 앞서보듯 시각은 한국에 대한 유럽 지성인들의 무지도 한몫했지만, 파시즘의 피해자이자 파시즘 타도에 적지 않은 기여를 한 소련[* 그 시기 스탈린의 소련은 대단한 전체주의 국가였지만, 원래 사회주의 사상이 낯설지 않은 서유럽 대륙국가들은 2차대전기 연합군이었던 소련의 역할만 생각해 미화해 착각했다(영국은 더했지만 세계대전이 끝난 뒤 [[케임브리지 5인조|소련 스파이 스캔]]들이 대대적으로 터지면서 분위기가 바뀐다). 마치 [[코소보|동구권 신생국]] 중에 독립을 도와준 [[조지 워커 부시]]의 동상을 세워 기리는 나라가 있듯이.]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도 한몫했다. 그러니까 북한의 침략 행위를 사실대로 비판하면 그 북한을 탄생시킨 소련에 대해 비판을 가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결국 사르트르는 북한의 침략을 비난하는 [[모리스 메를로퐁티]]와 대판 싸우고 결별하게 되는데, 북한의 현 상황을 놓고 본다면 결과적으로 메를로퐁티의 판단이 옳았다. 이 당시 북한 정권은 어쨌든 각종 좌파, 공산 세력의 연합 정권이었고, [[레지스탕스]] 문서에 나와 있듯이 프랑스를 비롯하여 서유럽 각지에서는 자국의 반파시스트, 반나치 투쟁의 중심에 공산주의 세력이 있었기에 공산권에게 진 빚이 있다고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유럽 지성의 대가들이 그러했던 만큼, 냉전기에 유럽에 유학한 국내의 지식인들(대략 386 운동권 세대까지의 연배가 해당된다.) 중에도 이 영향을 받아 1990년대~2010년대까지 그것을 되풀이한 사람들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